조복래의 人香萬里㊱성웅 이순신과 나라를 구한 충신들
- 작성일2026년03월06일 21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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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우리 역사 속 불멸의 영웅이다. 그는 조선을 넘어 세계 해전사에서도 손꼽히는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철저한 대비와 냉철한 판단으로 조선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필자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이순신 특별전’을 참관하며 장군의 생애를 다시 되새겼다.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와 장검 등 유물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조선의 장군으로서 겪었던 고뇌와 결단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순신이 정치적 모함 속에서 사형 위기에 놓였을 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단호히 “아니오”를 외치며 이를 막아선 충신들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점이었다.
개인적 이해타산과 당파적 이익에 매몰돼 공정과 정의를 외면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40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인재와 국익을 지켜낸 그들의 용기 앞에 깊은 경외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부 모함 속에 사지로 내몰린 충무공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강토가 유린당했던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돌아온 것은 명예나 포상이 아니라 투옥과 파직이었다. 조정 내부의 시기와 정치적 갈등이 빚어낸 비극적 결과였다.
경상우수사 원균 등 일부 세력은 이순신의 전공을 시기하며 부정적 장계를 올렸고, 선조 역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경계했다. 결국 무리한 출동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는 투옥돼 사형 위기까지 몰렸다.
고(故) 김동길 교수는 생전 강연에서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퇴각하는 왜군을 끝까지 추격하며 위험을 감수한 것은, 승리 이후 조정의 음해와 비난을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며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충신들: 정탁, 이원익, 류성룡, 조식
만약 충무공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제해권(制海權)을 상실한 조선은 보급을 재개한 왜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한반도는 왜의 영토가 되었거나, 명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했을 지도 모른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역사를 지켜낸 것은 오직 '국익'만을 생각한 소수 충신들의 용기와 절개였다.
우의정 정탁(鄭琢, 1526~1605)은 당시 조정 대신들이 선조의 눈치를 보며 침묵할 때 "장수는 죽이기는 쉬우나 얻기는 어렵다"는 상소문을 올려 광기 어린 숙청의 칼바람을 멈추게 했다.
현장 사령관이자 전시 총동원령의 책임자였던 도체찰사 이원익 (李元翼, 1547~1634)도 왕의 분노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강직함을 보였다. "전쟁 중에 이순신을 해임하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라며 제지했다.
이순신을 발탁했던 영의정 류성룡(柳成龍, 1542~1600)은 정치적 공격 속에서도 끝까지 그를 신뢰하며 군사 활동을 뒷받침했다.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은 이순신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으나, 그의 '경의(敬義) 사상'은 임진왜란의 물줄기를 바꾼 강력한 배후 동력이었다. "아는 바를 실천한다"는 가르침 아래 성장한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50여 명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주저 없이 의병을 일으켰다.
이들은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호남 진격을 육지에서 저지함으로써 충무공이 해상에서 수군 작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간접 지원을 했고, 이는 결국 엄청난 해전 승리를 가능케 한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 충신들은 단순히 한 장수를 구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맥을 잇는 생명줄 역할을 한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란 극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말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인재를 지켜내는 사람임을 몸소 증명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이순신의 빛나는 해전사(海戰史)
조선 후기 정조는 이순신을 영의정에 추증하며 「이순신 신도비명」에서 당시 명나라 장수 진린의 평가를 인용, 그의 공을 “보천욕일지공(補天浴日之功)”이라 기록했다. “무너진 하늘을 보수하고 흐린 해를 씻어낸 공로”라는 뜻으로, 구국의 업적을 극찬한 표현이다.
이순신의 위대함은 국내 평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업적은 당대 적국 일본과 동맹국 명나라를 넘어, 근현대 해군 강국인 서구 군사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돼 왔다.
진린은 선조에게 올린 보고에서 이순신의 인품과 지략을 높이 평가하며 깊은 신뢰와 예우를 보였다. 또한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전공을 기려 충무공에게 의장물과 하사품을 내린 바 있다.
일본 측 기록에서도 충무공의 위상은 뚜렷하다. 한산도 해전에서 패한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회고록에서 이순신의 지략과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 근대 일본 해군 이론가 사토 데쓰타로 역시 저서에서 이순신을 세계 해전사에서 손꼽히는 명장으로 언급하며,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서구 세계에 이순신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이다. 영국 외교관 윌리엄 조지 애스턴이 그의 전기를 소개했고,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도 저술을 통해 거북선과 전공을 서구에 알렸다. 이후 영국 해군사 연구자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는 이순신을 세계 해전사의 위대한 지휘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그의 명성은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국 장군 버나드 몽고메리는 역사상 뛰어난 지휘관의 사례로 이순신을 언급한 바 있으며, 지정학 전략가 조지 프리드먼 역시 동아시아의 역사적 판도를 바꾼 군사 지도자로 평가했다. 또한 명량 해전과 같은 지형 활용 전술은 미 해군사관학교의 군사사 연구에서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우리 정치에 던지는 역사적 교훈
임진왜란 당시의 비극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 분열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권은 대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생과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법안은 당리당략에 밀려 표류하고,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에도 소모적 정쟁이 반복되고 있다.
왜적의 침략을 눈앞에 두고도 “전쟁은 없다”며 파당의 안위에만 매달렸던 400여 년 전 조선 조정의 모습이, 오늘의 정치 현실과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정치는 본디 국익을 위해 존재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적 감정과 당파적 이해를 내려놓고 국난 극복에 힘을 모았던 선현들처럼, 오늘날에도 공동의 미래를 우선하는 지도력이 절실하다. 충무공의 구국 정신은 단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반드시 되새기고 각성해야 할 준엄한 역사적 교훈이다. (끝)
출처 : 맑은뉴스 https://www.ccn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