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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의 人香萬里 ㉞경고음 울리는 미국 민주주의

  • 작성일2026년01월27일 17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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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센터 명칭 논란 : 분열의 성지가 된 기념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표방하며 세계 질서의 판을 흔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목표는 뭘까. 집권초만 해도 미국의 국제적 리더역할을 포기하고 19세기식 고립주의(Isolationism)로 회귀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국제 공조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일방주의(Unilateralism), 모든 관계를 철저히 손익으로 따지는 거래주의(Transactionalism)가 그 핵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의 거침없는 행보는 단순히 미국의 쇠퇴를 차단하려는 수동적 고립주의라기보다, 미국의 힘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해 실익을 극대화하고 압도적 우위를 지키려는 이른바 ‘제2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2.0)’에 가깝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주요 외신들 역시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일련의 행보를 두고 담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먼저 뉴욕포스트(N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돈로독트린(Donroe Doctrine)을 전면에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와 먼로 독트린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19세기 먼로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주 대륙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복원하는 동시에 중국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와 폴리티코 등은 국익이 침해될 경우 압도적 무력으로 응징하는 공격적 민족주의인 잭슨주의(Jacksonianism)를 인용한다. 이런 흐름은 상식에 기반한 기존 워싱턴의 외교 문법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음을 시사한다.

현재 미국은 이러한 대외적 파고와 대내적 진통이 맞물린 ‘내우외환’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밖으로는 전방위적 관세 전쟁과 베네수엘라, 이란, 그린란드를 잇는 지정학적 개입이 도처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안으로는 이민단속국(ICE)의 고강도 단속과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에 대한 수사 압박으로 유례없는 혼란에 휩싸여 있다.

특히 미국 출신의 첫 교황 레오 14세가 트럼프의 비인도적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잇따른 단속 과정에서의 총격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자 민심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여기에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까지 일제히 강도 높은 비판에 가세하면서 미국 사회의 균열은 점점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사실 이 깊은 균열의 씨앗은 이미 지난 2025년 12월 18일, ‘케네디 센터 명칭 변경 사태’에서 뿌려졌다. 당시 센터 이사회가 공식 명칭을 ‘도널드 J. 트럼프 및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로 변경키로 기습 의결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1971년 개관 이후 성역처럼 여겨졌던 ‘존 F. 케네디’라는 이름 곁에, 의회 동의 없이 현직 대통령의 성함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병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백악관은 이를 “문화 기관의 효율성 제고와 전통적 가치 회복”이라 주장했지만, 문화예술계는 이를 공공 예술의 자율성을 정치 권력에 종속시키려는 시도로 비판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미동맹재단 창립을 주도한 김종욱 이사는 “이번 논란은 미국의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일종의 ‘역사 수정주의(Historical Revisionism)’의 성격을 띠는 것 같다”면서 “성역으로 여겨졌던 상징물마저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선 것은, 현재 미국 사회가 겪는 내적 갈등과 가치관 충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논평했다.

케네디 센터는 왜 ‘성역’이 되었나

케네디 센터는 단순한 공연 예술 공간을 넘어선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서거 이후, 미 의회는 특별법(JFK Center Act)을 통해 이곳을 ‘살아있는 기념비(Living Memorial)’로 명명했다.
 

       케네디 센터
 이는 박제된 건축물을 넘어, 그 안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자유와 통합의 가치를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철학적 선언이었다. 1971년 공식 개관 이래 이곳은 정파적 이해를 초월한 국가적 예술 거점이자, 미국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성소(聖所)로 인식돼 왔다. 특히 1960년대 민권 운동과 진보적 가치가 분출하던 역동의 시대, 리버럴한 미국이 갈구했던 승리와 통합의 정신이 이 공간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그간의 문화 주도권이 진보에 편향되었다는 판단하에, 이번 명칭 변경을 통해 60년대적 가치의 잔상을 허물어뜨리고고 새로운 보수주의의 승전비를 세우려 하고 있다.

예술계의 강한 반발

문화계는 거친 대응으로 맞섰다. 거장 스티븐 슈워츠를 필두로 재즈그룹 ‘The Cookers’와 무용단 ‘Doug Varone and Dancers’ 등이 줄줄이 공연을 취소했다. 워싱턴 국립오페라(WNO)는 55년간 이어온 센터와의 제휴 관계를 종료했고, 수십 년 전통의 크리스마스 콘서트마저 무산되는 파행을 겪었다. 예술가들은 “예술이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이번 사태를 공공기관을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로 규정, 강력히 연대하고 있다.

저항은 무대 밖 법정으로도 비화했다. 민주당 조이스 비티 의원을 중심으로 연방법 위반 및 명명권 남용 소송이 제기됐으며, 케네디 가문은 “국가적 상징물을 개인의 홍보 수단으로 사유화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미 연방법원은 명칭 변경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하고 심리에 착수했다.

보수.진보 언론, 극명한 대조

미국 언론의 반응도 극단적 정치 지형을 그대로 반영한다. 진보 매체는 "문화적 반달리즘이자 법치주의의 파괴"라고 맹비난한다. 명칭 변경은 미국 민주주의의 초당적 합의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사설을 통해 "국가적 기념비를 대통령 개인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시킨 '정치적 약탈'이자 의회의 권한을 침해한 초법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 언론은 문화계의 반발을 “기득권적 엘리트주의의 저항”으로 해석하며 ."좌파 카르텔에 점령됐던 문화의 정상화"라고 옹호한다. 폭스 뉴스(Fox News)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정 위기와 시설 노후화로 죽어가던 센터를 구했다"며 “진보 엘리트주의에 갇힌 문화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과정”이라고 지지를 표명했다.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

이 논란은 세 가지 핵심 쟁점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법적 정당성 결여다. 연방법에 명시된 명칭을 의회 승인 없이 이사회 정관 개정만으로 바꾼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이다. 둘째는 이사회의 거수기화 논란이다. 즉 표결 직전 단행된 이사진 재편과 반대파(당연직 이사) 배제의 적절성 여부다. 마지막은 문화 가치관의 정면 충돌이다 .“리버럴 편향을 바로잡겠다”는 권력의 의지와 “초당적 비정치성을 지키겠다”는 예술계의 원칙이 맞부딪치며 미국 사회는 거대한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다만, 이 현상을 단순한 보수와 진보간 이념 전쟁의 틀로만 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가 엇갈린다.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이백순 전 호주 대사는 “양 진영 간의 충돌이라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시욕과 나르시시즘이 결합한 촌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상황이 악화될 경우, 현재의 심리적 내전 상태가 실제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초당적 합의와 공공 가치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향후 미국 법원의 판단이 통합의 실마리가 될지, 아니면 더 큰 분열의 기폭제가 될지 국제 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끝)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