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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의 人香萬里㊴ 죽음 이후의 정치학, ‘미라 정치’

  • 작성일2026년04월28일 13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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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왜 죽음을 놓지 못하는가

죽음 이후 인간의 육신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정치 권력은 종종 당연한 이 질서를 거부해 왔다. 일부 공산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구 보존하는, 이른바 ‘미라 정치(mummy politics)’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시신 보존의 전통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이미 존재했다. 다만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화가 사후 세계와 영생을 믿는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경외의 표현이었다면, 현대 공산 국가의 시신 보존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이는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 상징 구축과 권력 정당성 강화를 위한 장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오준 전 유엔 대사는 “사후에도 시신을 숭배 대상으로 유지하며 이른바 ‘미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혁명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체제가 지닌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정치적 장치의 상징적인 사례를 우리는 가까운 베트남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1년 전인 1975년 4월 30일은 자유 월남(남베트남)이 지도상에서 사라진 날이다. 북베트남(월맹)과 베트콩 연합세력의 침공으로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며 공산화가 완성됐다. 이 승리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이미 1969년에 사망한 지도자 호치민이었다.

호치민은 사후에 일개 지역의 지도자를 넘어 체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격상됐고, 그의 방부 처리된 시신은 북베트남 군인과 민중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구심점이 됐다. 죽음조차 소멸시키지 못한 그의 상징성은 베트남 공산화 과정에서 거대한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레닌(1870~1924)을 시작으로 스탈린(1878~1953), 호치민(1890~1969), 마오쩌둥(1893~1976), 그리고 김일성(1912~1994)과 김정일(1941~2011)에 이르기까지, 신(神)의 존재와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체제들이 왜 이토록 ‘박제된 육신’에 집착했을까.

미라 정치의 시초 : 레닌

공산권 지도자 미라화의 시초는 1924년 사망한 소련의 건국자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이는 공산주의의 뿌리인 칼 마르크스(1818~1883)가 런던 교외 공동묘지에 소박하게 안치되고, 후원자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해 바다에 뿌렸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르크스주의의 본래 전통은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평범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레닌의 죽음을 기점으로 이 원칙은 뒤바뀌었다.

마르크스 이론을 러시아 상황에 맞게 변형해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이 1924년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하자, 부인 크룹스카야는 고인의 평소 뜻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족 묘지에 안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러시아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시신을 화장해 불필요한 우상화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권력 장악을 노리던 스탈린은 이를 정면 거부했다. 레닌을 '영원한 상징'으로 남겨두는 것이 체제 유지에 훨씬 유리하다는 정략적 판단하에 영구 보존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거대한 화강암 묘소가 세워졌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동원돼 부패 방지를 위한 특수약품 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가려 했던 레닌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라가 되어 유리관 속에 박제됐다. 레닌을 '사회주의의 성자'로 격상시켜 자신을 그의 유일무이한 정통 후계자로 각인시키려는 스탈린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미라 정치'를 주도했던 스탈린 본인의 최후다. 1953년 사망한 스탈린 역시 레닌 곁에 나란히 방부 처리돼 안치됐으나, 그의 사후 흐루시쵸프에 의해 진행된 '스탈린 격하운동'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1961년 스탈린의 시신은 묘소에서 꺼내져 화장됐고 크렘린 벽에 평범하게 묻혔다. 영원히 박제될 것 같았던 권력자도 정치적 향방에 따라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로 재창조된 '썩지 않는 성물(聖物)' 레닌은 이후 동구권과 아시아 공산 국가들이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표준 매뉴얼이 됐다.

유언 짓밟은 체제의 논리 : 마오쩌둥과 호치민

마오쩌둥은 생전 화장 장려 서약서에 앞장서 서명할 정도로 간소한 장례를 강조했다. 자신의 시신을 화장한 뒤 중국의 역사적 상징인 장강(長江)에 뿌려 달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976년 사망하자 공산당 지도부는 ‘인민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 시신을 체제의 상징으로 영구 보존키로 결정했고, 마오쩌둥 기념당이 톈안먼 광장 중심부에 건립됐다. 그곳에 안치된 시신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공산당 체제의 역사적 정통성을 상징하는 정치적 기념물로 남아 있다.

당시 중국은 중·소(中蘇) 분열로 인해 소련의 사체 보존 기술을 공식적으로 지원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당국은 독자적인 방부 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보존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초기에는 시신 보존 과정에서 얼굴이 부어오르는 등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결국 성공해 오늘날까지 기념당에 안치돼 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역시 생전 검소한 장례를 원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해 유골을 베트남 북부·중부·남부 세 곳에 나누어 뿌리고, 그 위에 작은 정자를 세워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라”는 구체적 유언까지 남겼다. 분단된 조국의 통합을 염원한 상징적 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전쟁 중이었던 베트남 당국은 국민적 결속을 강화할 상징이 필요했고, 시신을 방부 처리해 정글 속 비밀 지하 기지에 숨겨가며 보존하다 결국 하노이 중심부에 안치됐다. 인민을 사랑했던 지도자의 유언은 국가의 전략적 필요 아래 실종됐던 것이다.

세습의 성전 : 북한의 금수산태양궁전

북한의 사례는 ‘미라 정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러시아의 ‘레닌 연구소’ 기술진을 거액의 외화를 들여 초청, 시신 보존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북한은 이곳을 평범한 추모 공간이 아니라 ‘주체의 최고 성지’로 규정한다. 이는 ‘백두혈통’의 권위와 정통성이 끊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물리적 상징이다. 죽은 지도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수록 살아 있는 통치자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두 부자의 시신은 단순한 유해가 아니라 ‘백두혈통’이라는 혈연적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후계자가 선대 수령의 권위를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장치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관리비가 투입되고, 특수 약품 처리와 습도 제어를 위한 첨단 설비가 가동된다.

오준 전 대사는 “북한은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김씨 일가 외에 집권한 사례가 없는 만큼 러시아나 중국, 베트남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북한은 선대 지도자의 유훈 통치를 계승하면서도 현 지도자의 권력을 동시에 공고히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미라 보존을 끝내고 화장한 사례들

체제 붕괴 이후 미라 보존을 중단하고 화장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육신의 정치’ 역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냉전 종식과 함께 공산권 체제가 붕괴되자, 지도자의 시신을 공개하던 관행도 점차 사라졌다.

불가리아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소피아에 미라 형태로 안치돼 있었으나, 1990년대 체제 전환 이후 시신은 화장돼 재매장됐다. 몽골의 호를로긴 초이발산 역시 한때 미라로 공개됐지만, 민주화 이후인 2005년 유해가 화장돼 고향에 다시 묻혔다.

이처럼 한때 경외의 대상이었던 미라들은 체제 몰락과 함께 청산의 대상이 돼 구시대의 유산으로 전락했다. 인위적으로 보존된 육신이 민심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러시아에선 레닌의 시신을 계속 보존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두고, 매장해야 한다는 논쟁도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결국 ‘미라 정치’는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자의 육신을 빌려 벌이는 위태로운 상징 조작에 불과하다. 지도자의 생명력은 유리관 속 육신이 아니라, 그가 남긴 업적과 가치 속에서 이어진다. 그렇기에 공산권 지도자들의 미라는 죽음 이후에도 권력을 붙들어 두려는 인간의 욕망이 남긴 씁쓸한 흔적일 뿐이다. (끝)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